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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의 게시물 표시

2017년 11월 23일

늦은 밤 아내가 설겆이를 시작한다. 내가 한다고 해도 극구 만류하며 딸그락 연주자가 된다. 부엌에서 예쁜 얼굴을 한 여인을 멍하니 바라본다. 나를 안 만났으면 이 시간에 유라시아 상공 어디쯤에서 마카다미아를 먹으며 후배들과 아늑한 수다를 나누고 있지 않았을까? 이쯤되면 그녀를 더 편하게 해 줄거라 확신했는데... 자신감이 곧 패배감으로 이어진 고등학교 수학시험을 본 기분이다. 돈이 100원도 없던 적은 평생을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자신감이여, 부디 돈 앞에서 작아지지 말거라.

참교육

방학이니 기행문을 써서 내라는 건, 방학에 당연히 어디 갔다 왔을테니 관련해서 뭐라도 써서 내라는 거겠지만 한편으론 사정이 여의치 않아 여행을 못간 입장에서 보면 기행문 제출 때문에 가까운 어디라도 가자며 달달 볶는 아내 때문에 부부싸움의 원인이 된다. 참교육자는 진정 어려운 직업이다.

매운 밤

예전처럼 주경야동하는 날들이 줄었다. 혼자 살 때와 같이 살 때의 가장 큰 차이는 밤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아티스트는 밤에 역사가 탄생한다. 나 역시 사원이 된 이후로 밤보다는 낮에 빛나는 별종이 됐다. 고귀한 음악을 애지중지하며 숱하게 듣던 그 시절 덕분에 여전히 탁월한 사유의 아이디어를 내놓고는 있지만 감성의 고도화가 수익으로 연결되어 개인 채무에서 자유롭긴 힘든 모양세다. 날이 갈수록 지능이 높아지고 체력이 좋아지는 걸 느낀다. 여전히 일반인들과 정반대의 패턴대로 살다보니 그런 듯 하다. 시간은 더욱 내 곁에 바짝 붙어 온갖 애정공세를 펼친다. 죽음, 이별, 불안, 눈물, 혼동... 우리가 살아가며 반드시 파우치에 넣고 다녀야 할 슬픔의 요소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희망과 반전으로 이 세계를 재미와 흥미의 무대로 만들어왔다. 5월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금전적인 지출이 가장 많은 달이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내가 지닌 모든 사랑과 긍정의 힘을 건틀렛에 모아 한방에 보여주리. "딱! 부채의 절반이 증발했어!!"

안희정, 그건 아니정.

안희정. 충남도지사. 1965년생. 내가 당신에 대해 아는 전부다. 난 그저 당신의 운이 다 했다고 본다. 지금 당신이 오른 그 자리 또한 운이 다 한 거라 본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 위치에서 저지를 일을 당신은 똑같이 했을 뿐이다. 그저 지지리도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자. 그게 바로 당신이다. 당신의 뻔한 웅변에 넘어갔던 대중들은 이제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분노할 것이다. 언어에 관해 예민한 직업을 가진 나는 애시당초 당신의 어미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늙어 보이려 질질 끄는 그 음색이 당신의 외모와 썩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 건 비단 말투 만이 아닌 게 됐다. 어쩌겠는가. 이미 세상에 드러났고 더 많은 것이 밝혀질 것이다. 남은 건 여태껏 받아왔던 지지에 버금가는 저주 뿐이다. 동정도 바라지 말고 그저 남은 생을 어려운 사람에게 바쳐라. 그리고 두번 다시 어디에도 나서지 마라. 그 얄궂은 목청은 없던 것이라 생각해라.

소통의 시대

예전엔 방송인들이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미니홈피나 팬클럽 홈페이지 정도가 다였다. 이는 마치 코를 풀 수 있는 휴지가 키친타올 밖에 없는 심정과 같은 것이었다. 방송이 지닌 산간벽지를 넘나드는 무지막지한 도달 범위는 출연자들을 더욱 종속적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강력한 힘였다. 결핍 많은 외주 제작사 PD에게 온갖 핍박을 당해도 짚앞 투다리에서 회포를 풀어야 하는 현실이었다. 시간이 흘러 1인 미디어 세상이 열린 지도 10년이 넘었다. 그 사이 미디어의 허세는 크게 변지 않았고 영원히 귀속될 줄만 알았던 출연자들은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 역시 PD 출신이지만 뉴미디어로 넘어온 이후로는 방송을 본다는 것이 외지의 향취에 젖어 처음 간 맛집 천장에 달린 TV에서 보는 전국노래자랑이 다다. SNS가 우리 삶에 들어오면서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방송의 생명과도 같았던 소통의 장이 개인으로 넘어간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주제를 굉장히 잘 쓸 줄 알았는데 다른 작업을 마치면서 결국 그저 그런 미역국이 됐다.